차선우 목사님은 거룩한빛광성교회에서 청년부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액츠청년뉴스
<사순절을 보내며 #2>
2000년 전 메시아는 이 땅 가운데 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예수=여호와는 구원이시다’ 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나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으며” 이사야 53:3
[멸시] 라는 뜻은 사전적인 의미로 ‘업신 여기거나 하찮게 여기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시기위해 오신 예수님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받아 버림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왜 멸시하고 버렸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정말 많은 것들을 누리고 받게 됩니다. 오병이어 사건을 통해 배부름의 풍족함을 누렸고 아픈 자가 치유되는 것들을 보기도 하고 실제로 자신이 그런 병 고침의 은혜를, 오병이어 군중 속에 한 사람이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표적들로 예수님을 따르는 행렬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자신을 왜 따라다니는지 말이죠. 바로 자신들의 삶의 풍요로움과 회복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고 그 일을 예수님께서 하실 수 있다고 여긴 것입니다. 물론 그분은 우리의 삶에 풍요로움과 안정을 가져다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부와 명예도 허락해 주시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런 일들만을 위해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죠.
시간이 지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이 땅 가운데 온 목적을 이야기하십니다. 나는 너희들의 풍요로움만을 위해서 온 자가 아니라고 말이죠. 너희들의 배만 부르게 해주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고. 그러시면서 자신을 이 땅의 죄악을 끊어내기 위해 온 메시아임을, 생명의 떡임을 나타내시며 본래 온 목적들을 하나씩 이야기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왜냐면 그런 메시아를 원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바라고 원하던 신의 모습이 아니었고 자신들이 기도하고 있던 기도 제목이나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지도 않고 자꾸 생명의 떡이니, 구원자니 하는 소리에 오히려 예수님을 붙잡는 것이 아닌 그 자리를 떠나가려 합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더 이상예수님께 얻을 것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죠.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바라보더라도 누군가는 그 관계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어떠한 목적만을 갖고 만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바라고 원하던 목적을 이루지 못하거나 얻지 못하게 되면 관계를 정리하려 합니다.
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예수님과의 관계에 있어 메시아인 예수가 아닌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그를 만나고 마주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얻을 것이 없어지니 더이상 삶에 예수님이 필요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를 멸시하고 그를 고통 가운데 넣고 그를 조롱했습니다.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우리의 메시아라고 외친 자들이 하루 아침에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라 외칩니다. 얻을 것이 없으니 그를 멸시하고 버렸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멸시하고 버리고 있습니다. 그를 떠나고 있습니다. 떠났는 것은 우리가 교회를 나오고 안 나오고 가 아닌 예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 예수를 떠난 것입니다. 삶에 예수님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것이 예수를 떠난 것입니다. 예수는 나를 위해 전부를 주셨는데 나는 적당히 믿고 적당히 교회 다니고 적당히 하려고 하는 그것이 예수를 떠난 것입니다.
나의 삶에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니, 내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나의 기도 제목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교회를 떠나고 신앙을 져버립니다. 예수님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 일을 우리가 반복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얻을 것이 없다고 여깁니다. 믿음의 자리를 떠나려 합니다. 예수님이 없어도, 기도하지 않아도, 말씀을 읽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고 여깁니다. 내가 예수를 버린 것입니다. 내가 예수를 멸시한 것입니다. 삶에서 예수님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이 해결되어야 그다음 나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할 수 있다고 여러 가지 핑계들을 대곤 합니다. 내가 예수를 버린 것입니다. 내가 예수를 가장 귀하게 여기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는 나를 위해 전부를 주셨고 그는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나는 적당히 믿고 적당히 살아가려 합니다. 내가 예수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