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광복 75 주년을 맞았다. 우리는 독립운동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독립기념관은 이달의 독립운동가 라는 제목으로 매달 포스터를 게시 하고 있다. 무심코 지나쳤을 이 포스트를 한번 찾아보자. 대전에서는 지하철을 타러 가면 게시판에 또 잠시 들른 편의점에서도 만나 볼수 있다.
8월의 독립운동가는 이석영이다. 그는 1911년 신흥 무관 학교를 설립하였고 1991년 정부는 그에게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위키백과에서는 이석영을 이렇게 서술한다.
이석영(李石榮, 1855년 ~ 1934년 2월 16일)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다. 1855년에 이조판서를 지낸 이유승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본이 나라를 빼앗자 이석영은 자신의 농토를 팔아 망명 생활비를 마련하여 형제들하고 같이 만주로 망명하였으며, 경학사·신흥무관학교의 창설 운영자금으로 헌신하였다. 독립운동 자금 등으로 재산을 다 쓴 이후 이석영은 중국 각지를 홀로 떠돌아다녔다. 1934년 중국 상하이에서 8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일제시대 비참한 현실에서도 목숨을 바쳐 나라를 되찾기 위해 힘썼지만,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이 많다. 오늘 우리가 자유롭고 정의로운 나라 대한민국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온전한 독립을 이루지 못했다. 남과 북이 한 나라를 이루지 못했고, 여전히 친일이라는 단어가 TV와 지면에 단골로 등장한다. 지난 제75회 광복절 경축식에서는 광복회 김원웅 회장이 기념사를 통해 친일파를 숙청하지 못한 것을 한탄했다.
해방이후, 우리 국민은 수많은 시련과 고난을 뚫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제주4·3항쟁, 4·19혁명, 부마항쟁, 광주5·18항쟁, 6월항쟁, 촛불혁명은 친일반민족 권력에 맞선, 국민의 저항이었습니다. 이들 항쟁은 일제강점에 맞섰던 독립운동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일제패망 후, 미군정을 거쳐 한국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참, 가슴 아픈 일이 전개되었습니다. 이승만은 반민특위를 폭력적으로 해체시키고 친일파와 결탁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족반역자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가 되었고, 청산하지 못한 역사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고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을 알리기 위해 작지만 여러 곳곳에서 알리는 것에 힘쓰고 있다. 최근 언론과 방송에서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근대 역사가 독립을 열망하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시작된다고 하는 것을 더욱 환기 시키고 있는 요즘이다. 지하철을 내려가다 편의점에 음료수를 사러 가다 ‘이달의 독립운동가‘ 포스터가 보이면 가볍게 지나치지 말고 목숨 바쳐 나라를 지켰던 선조들의 이름을 되뇌여보고 기억해보면 어떨까.
멋저요 ~ ^^
꼭 알아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