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울릉도 선교 110주년 기념의 해
감리교인이 처음 선교했으나 감리교회의 기념물은 없어
울릉도 37개 교회(군인교회 포함) 중 감리교회는 단 2개뿐
포항 여객선터미널에서 썬 플라워 호를 타고 3시간 10분 정도를 가면 신비의 섬 울릉도에 이른다. 예전에 여객선이 1척만 운항할 때는 승선권를 구하느라 전쟁을 치렀지만 요즘은 3척이 운항하고 있어서 그나마 사정이 나아진 편이다. 하지만 여름 성수기에는 안심할 수 없으니 미리 예약하는 게 상책이다.

울릉도에 들어가려면 필연적으로 배 멀미를 경험한다. 배 멀미는 차멀미와 급이 다르다. 배 멀미를 피하려면 바다가 잔잔한 여름을 택하고, 속도가 빠른 쾌속선보다 여객선이 덜 흔들리고, 일반석보다 요금이 비싸지만 위에 있는 우등석을 예약하고, 아침을 먹기보다 속을 비운 공복상태가 편하고, 키미테를 붙이고 멀미약을 한 병 마셔도 멀미를 감할 뿐 피할 수는 없다. 그만큼 울릉도로 가는 길은 고생길이다. 위에 남은 음식물을 다 토할 즈음 저 멀리서 도동항이 보이고 흰 갈매기들이 멀리까지 마중 나와 ‘끼륵 끼륵’ 환영의 노래를 부르고 무리를 지어 군무(群舞)를 펼친다. 조용한 항구는 명절을 맞는 전통시장처럼 금세 북적거린다. 이렇게 고생하면서도 한 해 관광객이 40만 명 정도가 찾아오는 것은 다른 관광지와 다른 볼거리와 먹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천여 명이 타는 2천 톤급 여객선도 심하게 흔들리는데 한 조각 나룻배를 타고 이틀에서 나흘이나 걸리는 울릉도로 들어간 용감한 사람들이 있었다. 집채만 한 파도를 뚫고 쪽빛 바다를 건너 하얀 포말이 일어나는 해안가에 닿았을 때는 물보라와 땀으로 온몸이 멍들었을 것이다. 그 사람은 영국 성공회 소속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전도도 하고 성경책을 팔던 매서인(賣書人) 김병두(金秉斗)이었다.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 중 ‘울릉도교회사’편을 보면 “1909년 삼척군 영덕면 부호교회 감리교인 김병두가 본도에 와서 주의 복음을 전도하여 김가정(金家庭)이 합심 신도(信徒)함으로써 그 집에서 예배 처소를 정하고 교회를 설립했다”고 적혀 있다. 김병두가 눈길을 끄는 것은 그가 감리교인이라는데 있다. 김병두의 전도를 받아 1909년도에 나리교회(현재 천부제일교회), 장흥교회(현재 울릉간령교회), 도동교회(현재 도동제일교회), 저동교회(현재 울릉동광교회)가 세워졌다. 호주 선교부 소속으로 1913~1916년까지 울릉도에서 순행목사를 한 매견시(梅見施, J. N. Mackenzie)가 들어와 첫 번째 성례를 집례했고, 한국인 목사들도 순행목사로 사역하면서 일제 강점기 초기에 많은 교회들이 세워졌다. 한 알의 씨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듯이 초기 선교사와 전도인들의 노력으로, 2005년 인구주택 센서스에 의하면 경북의 복음화율은 11.6%인데 비해, 울릉도는 31.7%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장로교 통합 측에서는 2009년에 ‘울릉도 선교 100주년 기념관 건립 연구위원회’를 조직하였고, 2012년에 설계 작업을 거쳐 기공감사예배 및 기공식을 가졌다. 그 후 육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건축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기념관 건립을 포기하는 단계까지 갔으나, 2016년에 울릉 동광교회가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면서 꺼져가던 불씨가 살아나, 2017년 3월 20일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총회 울릉도(독도) 선교 100주년 기념관’ 착공식을 가졌다.

울릉도에 복음의 씨를 가장 먼저 뿌린 우리 감리교회는 어떠했을까? 선교 100주년을 맞아 2007년 6월에 S감독회장이 영남선교대회를 앞두고 울릉도와 독도를 ‘희망대심방’ 일정으로 방문했다. 울릉도가 소속된 경북동지방에서 오찬을 하고 독도로 가서 위문품을 전달하고 울릉 동산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희망의 쌀을 전달했다. 필자도 오찬에 참석했다. 2009년 10월에는 본부 선교국 총무와 삼남연회 감독과 경북동지방 감리사와 임원들이 울릉도를 방문해 ‘울릉도 선교 100주년 기념예배’를 드리며, 선교 100주년을 감사했고 다가올 100주년을 위해 기도했다. 동산교회 A목사는 선교 100주년 기념센터 건립을 해달라고 설명회도 가졌다. 독도를 방문하여 기도회도 하고 감리교회의 최동단인 죽암교회에 가서 예배도 드렸다. 필자도 그 자리에 참석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울릉도 선교 100주년은 기억에서 시나브로 사라졌다. 몇 년에 한 번씩 경북동지방에서 교역자회의를 하거나, 여선교회 계삭회를 하거나 장로회(원로장로회) 모임을 갖는 게 전부였다. 필자는 포항에서 14년째 살면서 울릉도에 4번 갔고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들어갈 수 있는 독도에는 두 번 들어갔다. 올해 6월에는 삼남연회 청장년관 주관으로 독도에서 남북 평화 기도회를 하려고 준비 중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 감리교회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올해는 울릉도 선교 110주년이 되는 해이다. 비록 100주년은 기념 예배를 드리며 군불 때는 데 그쳤지만 110주년에는 무언가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울릉도는 섬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건축하기가 쉽지 않다. 삼남연회에서 용문산 기도원을 편입하면서 ‘용문산 기도원에 관한 학술대회’를 열었듯이 울릉도 선교에 관한 학술대회를 열면 어떨까?(일각에서는 1896년 또는 1906년을 선교 시작으로 보지만 대체로 1909년 5월을 시작으로 보고 있다.) 3.1절 100주년을 맞아 ‘대한제국의 길(1897년 ~1910년)’ 사진전을 열었듯이 울릉도 선교 100주년 사진전을 열순 없을까? 민족대표 33인 중 자랑스러운 감리교인인 이필주 목사의 기념비를 건립했듯이 매서인 김병두의 기념비를 제막하여 감리교회를 자랑하면 얼마나 좋을까? 침례교회가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부흥강사인 J목사를 초청해 부흥회를 개최했듯이 한국교회에서 존경받는 감리교회 목사가 부흥회를 인도해 감리교회의 위상을 높이면 어떨까? 그리고 침례교회가 울릉도에서 여름 캠프를 하고 침례병원의 무료진료를 하고 남녀 선교회가 울릉도를 방문하고 교류하듯이 감리교회도 일과성 이벤트로 그치지 말고 지속가능한 후속프로그램을 펼치면 지역사회에 깊이 뿌리 내리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울릉도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한국 선교의 성공사례이다. 한국교회는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아 그로기(groggy) 상태지만 울릉도는 기독교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단순히 숫자가 많아서가 아니라 교회가 사회적 지위에 걸 맞는 역할을 감당하기 때문이리라. 리더십 전문가 존 맥스웰(John Maxwell)목사는 ‘리더십은 영향력이다’고 말했다. 한국교회는 울릉도 선교를 역할모델로 삼아 선교의 방향을 점검해야 한다. 그래야 잃어버린 리더십을 회복할 수 있다. 이 일을 위대한 감리교회가 먼저 하면 어떨까? 저 멀리 아침 해가 동터오는 가운데 동산교회에서 새벽기도가 한창이다. 감리교회는 언제나 민족을 깨우고 역사를 세우는 교회이기 때문에 한국교회의 위상도 감리교회가 높일 수 있다. 실현 가능한 일부터 차근차근 하다보면 더 큰 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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