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선우 목사는 현재 거룩한빛광성교회에서 청년부를 담당하고 있으며 미국 하와이 GBS 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사랑한다면]을 통해 청년들과 소통하고 있다 ©액츠청년뉴스
거리를 거닐다보면, 반짝이는 전구들과 크리스마스 트리로 거리가 아름답게 꾸며져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앞에서 사진도 찍고 좋은 시간들을 보내는 것을 보면 “아, 연말이구나, 성탄절이 곧 다가오는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기쁜 찬송 부르자!” 교회에서도 성탄 찬양들이 울려 퍼지고, 각 부서에서는 성탄절 칸타타를 준비하면서 아기 예수의 오심을 기쁨으로 준비한다. 예수가 오심이 우리에게 ‘기쁘다는 것이다’
기쁨이란 무엇일까? 사전에서는 [욕구가 충족 되었을 때의 흐뭇하고 흡족한 마음이나 느낌] 이라고 말하고 있다. 최근에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개인적으론 대한민국 축구가 16강에 올라갔을 때 너무 기뻤던 것 같다. 사람은 어떠한 순간에 기쁨을 누리고 있을까? 좋은 사람들과의 교제, 맛있는 음식들을 먹었을 때, 걱정했던 것들이 해결 되었을 때, 공부하던 시험에 합격했을 때, 원하던 직장에 취직 되었을 때. 여러가지의 모습과 형태로 우리는 기쁨이라는 것을 누릴 것이다.
이처럼 기쁨이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이 충족 되었을 때 좋은 마음이나 느낌이라고 하는데 성탄절을 앞두고 있는 지금 우리는 매 년 기쁜 찬송을 부르고 아기 예수의 오심을 기쁘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정말 그 사실이 기쁜지, 혹은 무엇 때문에 기뻐해야하는지를 모른다면 큰 의미가 없지 않을까.
• 기쁘지 않은 상황
이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은 정말 혼돈의 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페르시아가 이스라엘을, 그 이후 헬라가 이스라엘을, 그 다음 로마가 이스라엘을 통치하게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나 어려운 시기를 살고 있었다. 그렇기에 구약의 약속처럼 자신들을 구원해 줄 메시아를 간절히 고대 했던 것이다. 그 때 한 소식이 들려온다. 바로 유대인의 왕이 나셨다는 것이다. 동방의 박사들은 헤롯에게 가 유대인의 왕이 어딨는지 물었지만 헤롯은 알지 못했고 혹시 만나서 경배하게 된다면 자신들에게도 가르쳐달라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동방의 박사들은 아기 예수를 만난 이후에 헤롯에게 돌아가지 않았고 이 사실을 안 헤롯은 왕은 자신 뿐이여야 한다는 생각에 베들레헴에 있는 2년 안에 태어난 모든 남자 아이를 죽이라고 명령하게 된다.
그 이후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했던 메시아의 모습과는 달랐다. 자신들을 구원해 줄 메시아가 왔다는 것은 로마를 무찔러 줄 메시아, 자신들을 살려 줄 메시아의 존재가 필요했을 것이고 그래야 그들은 다시 회복 되어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참 된 기쁨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오심은 그리 큰 기쁨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유대인의 왕으로 온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었고 끌려가는 예수의 모습을 본 제자들은 저 사람을 모른다 말하고, 어떤 이는 세 번이나 부인하고, 어떤 이는 멀리 서 그저 바라만 보았다.
• 예수의 오심은 왜 우리에게 기쁨이 되는 것일까
혼돈의 시대, 어려움의 시대에 그는 이 땅 가운데 내려오셨다. 이 사실이 왜 우리에게 기쁨이 되는 것일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시대도 쉽지 않다. 늘 경쟁하는 사회, 물질이 우선인 사회, 살아남아야 하는 이 세상 속에 기쁨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런 삶 속에 매 년 성탄절을 앞두고 “기쁘다 구주 오셨네” 라는 찬양이 우리에겐 얼마나 기쁨이 되길래 기쁘다 구주 오셨다고 외치는 것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가운데 아기 예수가 오심이 정말 기쁜 것일까. 그렇다면 이 기쁨은 무엇일까
아기 예수의 오심은 우리가 알고 있는 기쁨과는 다르다. 내가 잘 되는 것.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의 오심이 우리에게 기쁨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그가 임마누엘 예수로 오셨기 때문이다.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완전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 하나의 신으로써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직접 들어오셔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어려울 때나 어느 순간에도 함께하시기 위해 임마누엘 주님으로 오신 것이다. 즉,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 기쁠 수 있는 이유는 나의 것이 이루어지고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떠한 상황을 살아가도 그 가운데 임마누엘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이다
나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오신 주님. 어느 상황 가운데에 있어도 내 옆에 계시는 주님. 앞이 보이지 않는 그 순간에도 길을 내어주시기 원하셔서 내 손 꼭 잡고 가시길 원하시는 주님. 좌절하고 낙심하고 낙망하는 그 순간에도 나보다 더 힘들어하시고 아파하시며 내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워주시는 주님. 나의 모든 순간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주님
그 주님은 우리에게 ‘임마누엘’ 로 오셨고, 마태복음 마지막에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자신이 내려온 이유도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올라가실 때에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신 주님이 우리가 아기 예수의 오심을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