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하와이 GBS 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사랑한다면]을 통해 청년들과 소통하고 있다 ©차선우
우리는 늘 기도하는 삶을 살아간다
살아가면서 기도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그 대상이 다를 뿐 사실 모든 사람은 ‘기도’ 라는 것을 해봤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 기도할까? 생각해보니 대부분 기도의 출발은 ‘고민’ 에서 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특별히 청년의 때는 고민의 시기이기 때문에 기도제목도 참 많다. 청년 사역을 하다 보니 정말 많은 고민을 하고 기도제목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부터 시작하여 지금 내가 고민하고 있고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도 있다. 앞으로의 일들도 고민하고 걱정한다. 나의 꿈은 무엇일까, 내가 다니는 회사나 직장이 과연 나에게 정말 맞는 곳일까, 내가 하는 이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 일까? 삶의 ‘일’ 적은 부분들도 고민하지만 관계에 대하여서도 많은 고민을 한다. 배우자에 대한 기도도 있고, 친구들, 동역자, 가족들과의 관계도 있다.
그리고 나의 기도를 응답받고 싶어한다. 당연할 것이다. 기도를 하는 것은 응답되어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응답되어지지 않는다면 과연 기도를 누가 할까? 하지만 나의 기도가 응답이 되지 않는 나의 삶의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서 우리는 하나님께 되물어보곤 한다.
“하나님 내가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데 왜 나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하나님 회사에서 저 상사가 저를 괴롭혀요. 어떻게좀 해주세요! 하나님 나의 환경과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하나님 제게 물질이 없습니다. 하나님 내게, 하나님 제 것이, 하나님 제가 생각하기엔, 하나님 제가 바라보기엔..”
여기서 무엇을 느끼는가? 우리는 기도를 한다. 그러나 기도의 답 또한 내가 정해놓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기도를 하면서 내가 원하는 답을 달라고 하나님께 말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하는가, 그리고 우리에게 기도의 응답은 무엇일까.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해 이 땅 가운데 오셨다. 그 이유는 궁극적으로 십자가의 사역을 감당하시기 위한 것이다. 그와 더불어 중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지키시고 행하시고 사랑으로 나아가시는지를 직접 보여주셨다.
예수님의 기도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께서 로마 군병들에게 잡히시기 전 예수님께서는 마음의 큰 근심과 고난이 있으셨다 .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마태복음 26:38)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는 것은 원어의 뜻으로 ‘극도의 괴로움’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할 것이다. 육체적인 고통과 함께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진다는 것 영적인 무게 까지도 동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상황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이어가신다.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마태복음 26:39)
예수님의 기도다.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과 상황 속에 계시다. 자신의 마음을 구하였다. 우리의 기도와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도 우리의 것을 구한다. “하나님 이것을 해결해주세요. 이 일이 나에게서 얼른 지나가게 해주세요. 하나님 나의 꿈은 이것인데 이 일을 이루어지게 해주세요. 하나님 이 일 감당하는 것이 참 쉽지 않네요. 이 잔이 내게서 옮겨졌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우리의 기도는 나의 기도제목은 여기서 끝이 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이어 기도하신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태복음 26:39)
기도 응답은 누가 하는 것인가?
우리의 기도가 그저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자신의 기도를 올려드리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구해야 하는 것들, 필요한 것들을 충분히 구해야한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나의 기도 수준은 내 것을 구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나의 기도 응답의 주권이 하나님 아버지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기도의 응답은 내가 구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인가? 예수님의 기도는 이 잔이 옮겨지길 기도하고 원하셨다. 우리는 내가 A를 기도했다면 A를 받아야지 ‘응답’ 이라고 여긴다. A를 기도했는데 B가 응답 됐다면 우리는 응답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기도의 응답과 기준을 나에게 맞춰 살아가고 있다. 내가 기도 응답의 기준을 정하고 있으며 내가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하나님의 일하심이라 이야기한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았을 때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응답이 없다 이야기하고 낙심하며 절망한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기만 하시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그런 분이라고 생각한다. 기도의 응답자. 그것은 너무나도 작은 생각이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을 넘어서서 그 분의 뜻을 나를 통해 펼치시고 일하시길 원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길 기도한다.
기도의 응답은 늘 있었다. 내가 원하는 기도의 응답도 있었고, 다른 방향의 응답도 있었다. 그 응답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다면 그것이 응답이다.